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이우스 마리우스 (문단 편집) === [[술라]]의 로마 진군 === 하지만 로마 역사상 군단 지휘권은 집정관 혹은 법무관이 갖는 것이 상식이였으며 예외의 경우가 임기가 만료된 집정관이 전직 집정관이라는 신분으로 지휘권을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아무런 공직에 있지 않았던 민간인 신분에 지나지 않았다. 군대 지휘권은 집정관 고유의 권한이었는데 이것을 빼앗아 일개 시민에게 주는 것은 전대미문의 폭거였다. 이때 놀라에 있었던 집정관 술라는 군단 편성을 마친 상태였는데 마리우스가 이 군단을 지휘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술라는 격분하였고 따라서 그는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군한다. 이것은 로마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로 수백 년간 집정관이 군단을 이끌고 로마를 공격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라는 대담하게도 수도 로마를 공격하였다. 술라가 로마를 공격하려하자 술라 휘하의 지휘관들은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불복한다. [*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한 명만 불복했다고 잘못된 언급을 하였다] 하지만 일선 병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은 술라 휘하에서 동맹시 전쟁을 치른 병사들이었다. 이들은 무산자들로 앞으로의 봉급 문제, 퇴직금 문제 등을 술라에게 기대고 있었으며 때문에 로마군이라기보단 술라의 군대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군사령관에 의한 사병화는 마리우스의 군제개혁이 준 폐해였고 술라가 이런 폐해를 이용한 첫 장군이었던 것이었다. 술라는 로마 공격에 6개 군단을 동원하였고 마리우스는 이를 저지하고자 노예와 검투사를 모와 군대를 이끌고 맞섰으나 패배한다. 마리우스는 자신의 퇴역병들이 정착하고 있었던 북아프리카로 달아났고 술라는 로마에 입성한다. 술라는 로마 원로원에게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하였는데, 그는 마리우스와 루푸스가 집정관의 고유의 권한인 군단 지휘권을 멋대로 바꾸었으며 이는 로마의 전통과 정치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고 따라서 현직 집정관인 자신이 나서서 이것을 바로잡고자 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자신을 억울한 희생양으로 묘사하였고 마리우스와 루푸스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원로원은 이를 받아들였고 루푸스가 통과시킨 모든 법안을 철회한다. 그러나 뒤이어 열린 집정관 선거에서 로마 시민들은 술라의 로마 진군에 대한 분노감을 표시하는데 술라가 내세운 후보들은 모두 낙선하였고 마리우스 일파에 가까운 후보들이 당선된 것이었다. 술라는 로마 진군이라는 행위를 지울 만한 군사적 성취를 원했고 때문에 폰투스 원정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그는 집정관에 당선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와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기원전 87년 집정관)|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를 불러 자신의 법안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맹세를 강요하고 [[미트리다테스 6세]]를 공격하기 위해 이탈리아를 떠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